기나긴 여정 끝에, 드디어 덥스텝에 도달하였다.
이게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좋아하는 장르일수록 쓸 내용이 없어진다.
사실 덥스텝도 자세히 보자면 엄청 자세히 볼 수 있겠지만,
아티스트와 레이블 하나하나 다 뜯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적당히 요약해보겠다.
[ 지금까지의 여정 ]
디스코의 몰락 이후 초기 장르의 탄생부터...
90년대의 광란의 파티들과...
처음으로 워블 베이스를 사용하는 덥스텝의 시초까지, 먼 여정을 거쳤다.
잠시 복습(?)을 해보자면.
1. 영국의 광란의 파티(Rave Party)의 열기가 엄청났다. 앗뜨거
2. 애시드 하우스 + 테크노 + 하드코어 + 이탈로 디스코 + 브레이크비트 + ...
= 브레이크비트 하드코어 (1990~)
근데 브레이크비트 하드코어가 고작 3년만에 분파된다(~1993).
여기서 브레이크비트가 주가 된 장르가 떨어져나오는데, 훗날 "정글(Jungle)" 이라 불리게 된다.
정글은 머지않아 영국에서 당당한 주류 장르로 우뚝 서게 되는데,
일부 여성 고객들은 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3. 이에 DJ들은 뉴욕의 얌전한 개러지(Garage)를 틀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래도 정글과 섞고싶어졌으니 브레이크 비트 추가하고 속도 빠르게 하겠음 ㅅㄱ"
4. 아니 그럴거면 애초에 4-on-the-floor 그루브로 안만들면 되잖아?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투 스텝 개러지가 등장하였다.
5. 투 스텝 개러지의 일부는 상업적으로 변모하였으나,
일부는 더욱 공격적이고 어두운 느낌(Darker)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 장르는 초기에 "Darker Garage"라고 불렸으나, 2000년대 이후 "그라임(Grime)"이라 불리게 된다.
덥스텝의 역사는 B.S와 A.S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B.S는 Before Skrillex, A.S는 After Skrillex이다.
어디서 나온 용어인지는 묻지 말자. 방금 생각나서 지은 말이니.
[ 진짜 덥스텝 이야기 - B.S : UK Dubstep ]
덥스텝(Dubstep)은 2000년대 초, 남부 런던에서 발생하였다.
조금 더 정확히 해보자면, 2001년 "Forward Night (FWD>>)"라는 클럽이 있었다.
이 클럽은 일반인보다 프로듀서의 비율이 더 높았고, 그들은 이 곳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시도하였다.
당일 만들어서 바로 틀어보고, 그런 느낌 되시겠다.
그리고 그 결과 탄생하게 된 음악들을, 2002년 즈음부터 따로 묶어 "덥스텝(Dubstep)"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급발진 한 것 같은데.
덥스텝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그라임의 경우,
개인용 컴퓨터와 작곡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기존의 힙합들과는 사뭇 다른 시도를 하였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LFO를 이용한 우블 베이스(Wobble Bass)인데, 소리는 대충 이러하다.
Coki (Digital Mystikz) - All of A Sudden (2007)
사실, 이는 그라임 뿐 아니라 드럼 앤 베이스에서 사용되는 베이스(이름이 뭐였더라...)와도 흡사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라임을 포함한 UK 개러지 씬과 드럼 앤 베이스 씬 모두
결국 자메이카 사운드시스템의 덥-레게 문화를 많이 받았으니까.
애초에 덥스텝의 Dub이 덥 뮤직, Step이 투 스텝에서 기인한 것이다.
다시 덥스텝으로 돌아와서.
일단 위의 짤막한 음악에서 볼 수 있는 덥스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투 스텝 베이스의 드럼패턴
2. 우블 베이스의 사용
3. 대략 140 BPM (= 70 BPM * 2)
이렇게만 보면, 이전 그라임의 인스트루멘탈 버전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맞긴 하다. 애초에 그라임에서 덥스텝이 파생된 느낌이었으니.
다만, 정작 소리를 들어보면 "요즘 덥스텝"이 아닌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보통 덥스텝이라 하면 아래와 같은 느낌을 생각하니까.
Teminite - Inception (2016)
이는 미국 스타일의 덥스텝과 영국 스타일의 덥스텝이 상당히 상이하기 때문이다.
처음 등장했던 UK Dubstep은, 미국에서 상당히 공격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누구때문에?
[ 진짜 덥스텝 이야기 - A.S : US Dubstep ]
2010년, 혜성같은 DJ가 등장하는데, 이름하여 Skrillex(스크릴렉스) 되시겠다.
그가 그래미 상까지 수상하게 된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2010)」 EP는
본격적으로 아메리카 스타일의 덥스텝을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올려놓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다만, 여기서 보여진 강렬한 미드 레인지의 베이스들은 이전부터 시도되었던 것들이긴 하다.
당장 그의 이전 작인 My Name Is Skrillex EP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시점부터 더 이상 덥스텝의 베이스는 "베이스"가 아니란 점이다.
실제로 오디오 스펙트럼으로 관찰해보면 일반적인 베이스보다 중~고음역대 주파수가 세게 잡히는데,
애초에 "베이스(BASS)"가 곡의 낮은 파트를 담당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 한 결과물이다.
이와 관련해, 덥스텝이 유행할 수 밖에 없었던 한 가지 흥미로운 고찰, 혹은 추측이 있다.
US 덥스텝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그러니까 2010년 초반 즈음은
본격적으로 스마트폰(및 아이팟 등)이 널리 퍼진 시기였다.
사람들은 외부에서도 음악을 듣고싶어했는데, 당시에는 낮은 음역대를
풍부하게 전달할만한 이어폰이 널리 퍼지지 못하였다.
이에 저음역대의 비중이 높았던 다른 EDM 장르들보다
어쩌다 중음역대가 강조된 덥스텝이 싸구려 이어폰으로도 원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전달하다보니
유행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이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아무튼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브 베이스(Sub Bass)는 덥스텝에 있어서 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대충 서브 베이스의 소리)
근데 진짜 아무 이어폰이나 쓴다고 들을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본인도 주파수 영역대가 풍부한, 그러니까 사짜로 20~20k라고 적은거 말고,
진짜로 그 정도 음역대를 제공하는 이어폰/헤드셋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서브 베이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아무튼 덥스텝의 주류가 이 아메리카 스타일의 덥스텝으로 넘어오면서
원본 오리지널인 UK 덥스텝을 무시하는 풍조마저 생기기 시작했고,
이에 열받은 사람들은 US 덥스텝에 "브로스텝 (Brostep)"이라는 멸칭(??)을 붙이는 식으로 응수했다.
뭐... 어찌되었든, 그런 의미에서 "진짜 오리지널 덥스텝"은
다시 소수의 마니아층만 듣는 마이너한 장르로 전락했다.
[ 덥스텝과 관련된 여담들 ]
아래는, 일단 준비하긴 했는데 어디에서 풀어야 할지 애매해서 뒤로 미뤄둔 내용들이다.
부담 없이 읽어주셨으면 한다.
Meg & Dia - Monster (DOT.EXE 2013 rework)
1. 인기의 급감
덥스텝의 인기는 놀라울치만큼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2014년 전후로 인기 있던 아티스트들이 대거 타 장르로 전향하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메이저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다른 주류 장르들(하우스, 트랩/팝, 테크노 등)이나
후속 장르들로 넘어가서 활동중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활동중이긴 하나,
적어도 이전과 같은 명성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 같다.
2. 덥스텝의 파생 장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스텝(정확히는 브로스텝)은 한 시대(라 해봤자 5년정도..?)를 풍미했던 장르이기에,
이에 따른 수많은 장르들이 파생되었다.
가령, 멜로딕한 부분이 가미된 "멜로딕 덥스텝(Melodic Dubstep)"이라던지,
영국의 덥스텝 아티스트 Chime이 2020년 무렵 개척한 "컬러 베이스(Colour Bass) / Future riddim"라던지,
이 장르의 모태가 되는 "리딤(Riddim)"이라는 장르도 있다.
드럼 앤 베이스의 빠른 템포와 결합된 "드럼 스텝(Drum Step)"도 있고,
2010년대 중반에 발생한 "퓨처 베이스(Future Bass)",
메탈 음악(주로 일렉기타)과 결부된 "메탈스텝(Metal Step)",
Snails라는 DJ/프로듀서만의 베이스가 돋보이는 "보밋 스텝(Vomit step)" (이름값 한다..)
상당히 거친(Harsh) 베이스가 주류가 되는 "데스 스텝(Deathstep)" 및 "티어 스텝(Tearstep)",
100~110 BPM대의 (라지만 사실상 110 BPM으로 정형화된) "글리치 합 (Glitch Hop) / 110BPM",
(딱봐도) 일본에서 발전한 "카와이 베이스 (Kawaii Bass)",
애니 캐릭터의 사운드가 샘플링된 "애니 스텝 (Anime step)",
왜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칠-아웃되는 "칠 스텝 (Chillstep)",
트랩과 결합된 "트랩 스텝 (Trapstep)",
덥스텝의 정통 후계자(?)격인 "Post-Dubstep",
냉혹한 로봇과도 같은 "로보스텝 (Robostep)"
도대체 이건 뭔가 싶은 "서브 스텝(Substep)",
이 모든게 개러지에서 파생되었음을 잊지 말자는 "포스트 개러지(Post Garage)"까지,
진짜 많고도 많고도 진짜 엄청 많다.
이걸 도대체 일일히 구분하는 사람들은 뭐하는 놈들인지 진짜 궁금하다.
어쿠스틱 및 오케스트라와 결합된 "덥케스트라 (Dubchestral)"라는 것도 있는데,
솔직히 이건 들어봐도 잘 모르겠다.. 그냥 스트링스 들어가면 이건가?
여기에 영향 받은 장르까지 포함하면 컴플렉스트로(Complextro)나 뭐 이것저것 또 엄청 붙지 싶다.
아마 래리 레반이 작금의 상황을 본다면 "도대체 이게 뭐에요 시바" 라고 할 것 같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자.
Knife Party - bon fire (2012)
사실 이런거 구분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듣다 보면 딱 필요한 장르만 남게 된다.
3.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2010)」와 관련된 연구
영문 위키에도 나와있는 연구이긴 하다.
이 음악을 들려준 피험자들은 그렇지 않은 피험자들보다 모기에게 훨씬 나중에(much later) 공격당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저주파수 영역대가 암컷 모기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쩌고 하긴 하던데,
그냥 여기까지만 읽고 말았다.
더울 때 덥스텝을 들으면 모기에 안물린다고?
에이 ㅋㅋ 그렇게 따지자면 지난 여름에 본인은...
....
...어?
비록 주류 아티스트들이 이탈했다고 한들, 어쨌건 덥스텝은 애시드 하우스 만큼이나
너무나도 많은 장르에 영향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UK 개러지 씬의 최대 아웃풋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덥스텝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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