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냉혹한 음악의 세계/[음악] 냉혹한 EDM의 역사

[EDM] #01. 실험 음악과 샘플링 : 전자 음악의 아름다운(?) 여정의 시작

728x90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일단 적어도 전자 음악(Electronic Music)이라는 큰 분야가 끝나기에는 아직 너무나 먼 미래일 것 같으므로,
(개인적으로는 클래식 음악보다도 오래갈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그 시초들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전자 음악의 개척기(여기서는 1960년대 이전을 말한다) 동안, 온갖 잡다한 시도들이 있었다.
물론 이들 중에서 우리가 '음악적'으로 감상할 만한 결과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누군가는 회로를 구성하여 인위적으로 규칙적인 소리를 만들기도 하고,
누구는 노이즈(잡음)를 뭐 이런저런 방식으로 가공하기도 하고,
누구는 상업 광고나 기존의 소리를 잘라 붙여보기도 하고...
 
위키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복잡하게 장르를 구분하지만,
여기에서는 '전자 음악'에 관련된 몇몇 주목할만한 시도들만 살펴보자.
그리고 이 시도들은 EDM의 역사로 향하는 몇몇 입구(Entry)로서 작동할 것이다.


[ 테레민 / Theremin ]

 

자료마다 다르지만, 최초의 전자 음악 (정확히는 전자 기기를 이용하여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는
대충 1940년대 후반, 혹은 195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테레민(Theremin)을 고려한다면 그 시기를 20년 정도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만든다' 보다는 '연주한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테레민은 1920년에 러시아의 물리학자 레프 세르게예비치 테레민에 의해 탄생했다.
악기 양쪽에 위치한 안테나(수직, 수평)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을 손으로 간섭시켜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아무튼 기존의 악기들이 무언가를 두드리거나 울리거나 마찰시켜서 소리를 발생시켰다면,
이 장비는 조금 (많이) 새로운 방법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편이었다 - 그리고, 그나마 '전자적'이긴 했다.
 
테레민은 대충 아래 사진처럼 생겼다.

요즘에도 가끔 유튜브에서 연주하는 영상이 나오는 것 같더라.

사실 사진만 봐서는 뭔지 모르겠다.
연주 영상은 대충 아래와 같다.
 

 자세히 보면, 무슨 사다리꼴 모양의 박스에 안테나 같은 것만 꽂혀있고?
웬 아조씨가 나와서 지휘하는 건지 그냥 손을 떠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를 시도 중인 모습이 보인다.
사실 말 안했으면 저게 연주라는 것도 몰랐을걸?
 
아무튼 현악기처럼 들리는 소리가 저 악기의 소리이다.
 
일단 여기서는 테레민을 전자 악기로 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며,
"테레민 = 전자 악기, but 테레민을 이용한 음악 ≠ 전자 음악" 정도로 정리하자.
 
다시 실험 음악으로 돌아가자.


[ 실험 음악 / Experimental ]

<a.k.a>
-
 
<Period>
-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시기의 전자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전자적인 음악)들은 다분히 실험적이고, 때로는 추상적이었다.
그리고, 보통 예술 쪽에서 '실험적인(experimental)'이나 '추상적인(abstract)'이라는 말이 붙으면
상당히 이질적이고 범인(凡人)의 이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통 그 다음에 "기존의 ~~을 벗어난다" 등으로 이어지니까.
(여기는 둘 다 붙었으니 두 배로 조심하자)
 
일단, 실험 음악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Experimental music is a general label for any music or music genre 
that pushes existing boundaries and genre definitions.
실험 음악은 기존의 경계와 장르의 정의를 뛰어넘는 음악, 혹은 그런 장르들을 일컫는다.
(벌써부터 기존의 경계와 정의를 뛰어넘는다는 말이 나왔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그냥 기존에 없었던 모든 음악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가 아는 모든 전자 음악은 실험 음악의 한 분파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좀 과장하자면 모든 전자 음악은 실험 음악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장르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음악에 실험적인 기법을 추가하거나
아예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굳이 예를 들자면, 기존의 베이스를 극도로 공격적으로 변형시켜서 더 이상 베이스(낮은음)가 아니게 만든다든가,
다른 악기들을 야금야금 전자음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드럼까지 기계로 대체한다든가 등등.

내가 만들었지만 참 ㅈ같으므로 "실험음악"이라 해야겠다

우리가 집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온갖 소리들(잘 처리된 샘플이든 대충 휴대폰으로 녹음한 소리이든)을
다듬고, 자르고, 늘리고, 복사하고, 붙여놓고, 아무튼 뭔가를 하고,
그 결과물을 .wav가 되었든 .flac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하나로 합쳐서 파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여러분이 이것을 '음악'이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예술 진흥법 몇 조 몇 항에 의거하여 개소리를 지껄였다는 이유로 처벌받지는 않을 것이다.
창작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나아가서 하나의 '장르'라고 표현해 줄지는 다른 문제이다.
그전까지는 그냥 하나의 '소리'일뿐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이 그 소리를 찾아서 듣고,
그곳에서 음악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여기서, 예술성이 아니라 '음악성'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유가 있다)
 
나도 저런 거 만들어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도전 정신을 가진 각 분야의 사람들이 앞서 나가는 개척자를 뒤따른다.
고맙게도, 그러한 시도 끝에 탄생한 '들어줄 만한 소리'는 오늘날 전자 음악의 시초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고, 대부분은 음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들이었지만.
 
앞서 최초의 전자 음악은 대략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했었다. 
여기 그 예시들이 있다.
Luciano Berio - Perspectives (1957)
Bruno Madaerna - Syntaxis (1957) 
Tom Dissevelt - Syncopation (Orbit Aurora) (1959)
La Monte Young - Excerpt.... (1961)
 
예술사적이고 전자음악의 시초고 그런 의미 부여를 다 지우고,
오늘날 저런 음악이 멜론에 예고 없이 띡 올라왔다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저런 시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공상 SF 영화에서 외계인이 등장할 때 나올법한 효과음으로 시작된 저 소리들은,
오늘날의 전자 기기들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표준 과정을 확립하였다.


[ 샘플링 / Sampling ]

<a.k.a>
-
 
<Period>
1940s ~ 
 
샘플링(Sampling)이라는 단어는 통계학이나 실험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음악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기법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체 곡을 다 쓸 수는 없으니 내가 작업하는데 가장 사용하기 좋은 부분만을 취해서 사용하는 기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부분'은 리듬, 멜로디, 보컬, 효과음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House 음악의 대부, Frankie Knuckles

샘플링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문화와 장르들을 탄생시켰다.
이번 글에서 다룰 구상 음악(Musique Concrete)나 사운드 콜라주(Sound Collage)는 물론,
매쉬업, 랩/힙합, 하우스(House)나 개러지(Garage)와 같은 거대한 씬들도 샘플링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글의 길이 상 다루지는 못했지만, 브레이크 비트(Breakbeat) 씬 역시
샘플링이 없었다면 사실상 존재할 수 없었다.
 
물론 샘플링이 저작권 법 상으로 문제가 없는 행위는 아니다.
다만, 초기에는 샘플링을 위해 너무나 큰 비용이 들었기에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기법이 아니었고
이제 막 등장한 파릇파릇한 신생 산업에 오래된 구식 법을 들이밀어서 제지하기가 어려웠었기에,
상당히 노골적인 수준으로까지 샘플링을 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을 뿐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이어질 "사운드 콜라주"에 등장한다.)
 
 당연히 오늘날에도 샘플링은 전자 음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로,
아티스트들이 작업할 때 사운드 효과나 기타 멜로디, 베이스 라인 등을
샘플 라이브러리에서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 구상 음악 / Musique Concrete ]

<a.k.a>
Concrete music, Acousmatic music, Elektronische Musik ...
 
<Period>
1940s~
 
"작곡가들이 머지않아 그라모폰에 녹음된 소리를 이용한 곡들을 투고할 것이다."
- 「Panorama of Contemporary Music (1928)」, André Cœuroy

아직까지 후속작 씹어먹는 갓-겜 배틀필드1 하싈?

사실 전 세계를 뒤흔든 두 번의 세계 대전동안 유럽이 쑥대밭이 돼버리는 바람에,
1950년대 이전까지의 전자 음악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사실 있더라도 그냥저냥 여기서 소개되는 소리들이랑 비슷하겠지만)
따라서, 구상 음악(혹은 구체 음악)은 사실상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자 음악의 장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걸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우선, Musique라는 단어에서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예측이 간다.
영어로는 "Concrete Music", 즉 "구조 음악"이라고 번역된다.
 
구상 음악은 기존의 소리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소리들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들을 일컫는다.
왜 자꾸 장르 이름은 '음악(music)'인데 '소리(sound)'라고 표현하는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최초의 녹음기(Phonographone)는 1879년 토마스 에디슨이 발명하였다.
1890년대에는 조금 더 발전된 그라모폰(Gramophone)이 발명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얇은 비닐판에다가 소리를 녹음하고, 나아가 이를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Gramophone. 사실 이것도 할 말이 많긴 하지만 접어두자.

이런 기술의 발전을 보면서, 이미 1920~30년대의 사람들은 녹음 기술과 라디오 기술이 발전하면
이를 편집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샘플링'의 개념이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생각했든 간에, 안타깝게도 1920~30년 당시의 기술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19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온 유럽이 전쟁의 포화에 빠져있던 시대였기에,
그들의 생각은 "언젠간 가능할 듯? 진짜로ㅇㅇ" 정도만으로 잠시 접어두었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42년.
프랑스 파리에서 레지스탕스의 방송국으로 사용되던 Studio d'Essai의 Pierre Schaeffer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언가를 시도중인 Pierre Schaeffer.

과학 기술은 전쟁과 함께 발달한다.
라디오(=통신 기술)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Schaeffer는 전쟁을 겪으면서 당시의 진보하는 라디오 기술을 익히게 된다.
그러던 중 아돌프 열사가 히틀러를 암살하는 데 성공하고, 뚱뚱한 남자와 꼬마 아이가 등장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더 이상 Schaeffer의 스튜디오는 레지스탕스만을 위한 방송국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고,
그는 그동안 누적된 지식들을 자신의 음악(?) 사업에 접목시킨다.
최초의 '샘플링'을 이용한 무언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가 창안한 "Concrete Music(콩크레트 음악)"이라는 개념은
우리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소리는 악기의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부터 길 가다가 흙 밟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물은 그다지 음악적이지는 못했다.
만약 음악적이었다면 실험 음악이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Jozef Malovec: Orthogenesis (1966/1967)

이쯤에서 음악의 정의를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Music is generally defined as the art of arranging sound
to create some combination of form, harmony, melody, rhythm or otherwise expressive content
음악은 일반적으로 형식, 조화, 멜로디, 리듬
또는 기타 표현적인 내용의 조합을 만들기 위해 소리를 배열하는 기술로 정의됩니다.
 
일단, 제일 처음의 '일반적으로'에서부터 걸러진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사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위 '음악'의 정의에서 구상 음악이 만족하는 것은 잘 쳐봐야 "배열"밖에 없는 것 같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나마 '하나라도' 만족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0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는 위 정의의 어떤 내용도 포함되지 않는 이상한 짓거리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넓게 봐서 음악이라고 인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를 진심으로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감상'할 수 있다면,
이건 여러분의 상태를 살짝 의심해봐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구상 음악에서 그나마 '음악'과 관련된 유일한 내용을 꼽아보자면
이 장르(?)를 관통하는 "Concrete Music"의 개념을 이어받는 후속 장르와 관련된 내용이다.
물론, 얘들은 (일시적이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였다.
왜냐하면 바로 직전에 그러지 못했던 선행 장르가 있었고, 인간에게는 학습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사운드 콜라주 / Sound Collage ]

<a.k.a>
 Sound Collage, Tape Editing, Sample Music, Collage, Plunderphonics
 
<Period>
1950s ~ 
 
 
"If we can't stop this nothing is safe in our business"
"이런 짓거리를 막지 못한다면, 이 업계에서는 안전지대가 사라진다"
- "Flying Saucer Takes Off; Pubbers, Diskers Do a Flip" Billboard, July 28, 1956, p. 17
 
 
다시 말하지만, 1940년대에 등장한 구상 음악도 샘플링을 이용한 음악이기는 하다.
물론 그걸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가장 중요한 대전제가 필요하지만.
 
따라서 샘플링을 이용한 보다 음악다운 시도는 콜라주(Collage)라고 할 수 있다.
콜라주는 프랑스어로 "접착하다"라는 뜻으로, 휴대폰 갤러리에 존재하는 기능인 그 '콜라주'가 맞다.
 
사실 초기의 사운드 콜라주 그 자체는 여전히 실험적인 영역에 불과했으나,
(= 음악 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소리이다)
1980년대 후반, 발전된 샘플링 기기와 기법으로 보다 음악적으로 진보한 사운드 콜라주들이 등장했으며
이를 "플런더포닉스(Plunderphonics)"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담으로, 플런더포닉스의 선구자인 캐나다 작곡가 존 오스왈드(John Oswald)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비상업적인 용도로 만들었음을 굉장히 명확히 하겠다"라고 선언하고 무료로 배포했다.
 
글 쓰다가 생각났는데, 이 영상도 여기에서 말하는 콜라주로 볼 수 있겠다.

이게 아마 2000년 초반인가에 나왔다. 이런 작품들 수만개를 날려먹은 게등위는 그냥 나가 뒤지는게 맞아보인다.

마찬가지로, 구 합필갤(합성필수요소갤러리)에서 만들던 음성/비디오 창작물들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겠다.
(실제로 '야인시대'의 저작권 문제로 싹 다 잘릴뻔한 것까지, 여러모로 유사점이 많다)
 
아무튼
 
계보상으로 콜라주는 구상 음악에서 이어지는 장르이다.
그러나 구상 음악이 일상의 온갖 소리들을 이용해서 그저 갖다 붙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콜라주는 이미 완성된 음악이나 소리들을 사용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시멘트에 구멍 뚫는 소리보다는,
하다못해 아나운서가 뉴스 기사를 읽어주는 게 그나마 더 음악적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최초의 콜라주 작품이자 최초의 매쉬업 작품으로 알려진
 Buchanan & Goodman - The Flying Saucer (1956)
뉴스 아나운서의 멘트 사이사이에 당시 유행했던 곡들을 끼워 넣은 작품이었다.
(실제 뉴스는 아니었고, 외계 침공을 가장하여 제작자 중 한 명이 녹음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55~56년 음악 차트의 top 20에 들었던 곡 17개를 사용했는데,
당연히 상업적인 음악을 이따구로(?) 사용했으니 바로 고소빔을 맞았다.
 
근데 이겼다. 뭐지.
 
업계에서는 "저런 짓거리를 못 막으면, 음악 산업이 위험 해질 것이다" 라며 판매 금지 처분을 요청했으나,
판사랑 배심원들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1956년 11월, 배심원들은 판사 공인 '참신하고 예술적이고 훌륭한' 이 곡에 대한 판매 금지 처분을 거부했다.
사실 이제 막 새로 생긴 장르에게, 기존의 법을 명확하게 딱 잘라 적용하기도 힘들긴 했겠다.
아무튼 이러한 선례가 생기자, 아티스트들은 이후 수 십 년간 거의 법을 신경 쓰지 않고 샘플링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반 산업계는 점점 더 거대해져 갔다.
그들은 수많은 저작권 관련 분쟁을 겪으면서 엄청난 규모의 법률단을 갖추게 되었고
콜라주 작품들의 모든 상업적/예술적/음악적 권리를 거부했다.
 
물론 아티스트들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대형 레이블들의 아니꼬운 간섭과 위협과 협박에 대한 대응으로,
아티스트들은 Copyright를 Copy'left'나 'K'opyright 등으로 바꿔 쓰면서 놀리기도 했다.

Copyleft Marker. 실제 사용되고 있는 마크이다.

업계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열받을 일이긴 하지만, 사실 그다지 문제 될 바는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샘플링'이라는 기법은 같은 테이프를 여러 개 사서 일일이 자르고 붙이고 말리는
개노가다성 작업이었고, 여기에 드는 장비도 너무나도 비쌌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거의 샘플링을 위한 장비들이 차 한 대 값을 가뿐히 상회하였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콜라주 아티스트들은 업계 입장에서도 그냥 귀찮은 애들 몇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판도는 1987년 너무나 갑작스럽게 바뀌게 된다.
바로 E-mu SP-1200라는 샘플러가 탄생한 것이다.

E-mu SP-1200의 실물도

아티스트들에게는 정말로 신의 선물처럼 보였겠지만, 음악 산업계 입장에서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이 작은(당시의 다른 기기들에 비하면 그랬다) 기기 하나만으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곡이든지 손쉽게 샘플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계와 관련되어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으니, 대충 KLF 사건이라고 불러보자.
 
KLF는 본래 Justified Ancients of Mu Mu (JAM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밴드였다.
그들은 1987년, 1987 What the Fuck's Going On?라는 앨범을 발매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곡이 하나 있었다.

JAMs - The Queen And I
ABBA - Dancing Queen

아ㅋㅋ 이건 선 넘었지ㅋㅋ
당연히 ABBA 측에서는 법적 대응에 나서서, 이 곡이 포함된 모든 앨범들을 강제로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그러자 JAMs는 저작권 상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모조리 잘라내고
"집에서 이렇게 복구해서 들으세요"라는 지침서를 동봉해서 다시 발매해버린다.
그리고 다음 해에 저작권법이 뭣같다는 내용의 샘플로 가득 찬 앨범을 내버리고,
샘플링으로 가득 찬 히트곡으로 한 탕 땡기더니,
이름을 The Kopyright Liberation Front(KLF)으로 바꾼다.
그리고 3년 후, 그들은 약간의 마케팅 지식과 SP-1200 샘플러로 히트곡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을 발매하는데,
이 책은 이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참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례였을 뿐, 105개의 곡을 샘플링해 전체 앨범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각 샘플들에 대한 라이선스를 확보했다고 한다.)
 
통일되지 않은 오래된 지적 재산권 보호법으로는 콜라주를 비롯한 샘플링을 어떻게 제지하기가 힘들었고,
이는 1998년 "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DMCA)"이 제정되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DMCA가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 콜라주는 상업성을 완전히 잃게 되면서 거의 사라지게 된다.
 
요즘도 간혹 비영리적이고 순수한 예술적인 의도로 만든 작품들이 존재하고
DMCA의 제정 이후에도 저작권법의 허점을 파고든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노골적인 샘플링을 통한 이윤 창출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 노이즈 / Noise ]

<a.k.a>
NOISE
 
<Period>
1960s~
 
"지지직"
- 치지지직
 
놀랍게도, 노이즈 음악(Noise music)이라는 개념이 과거에도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거리는 노이즈뿐 아니라,
그에 근사하는 잡음과 소음들이 모두 포함된다.
과거라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였을 것이고,
미래라면 인류 우주 개척 연합의 수도인 마리아나 행성과
산업의 허브로 떠오른 셀타III 행성의 성간 통신에서 발생하는 노이즈 정도가 되겠지.
그리고 그 중간 즈음의 어딘가에 존재하는게 바로 여기서 다룰 노이즈 음악이다.
 
이 장르를 정의하는데 "릴리즈 된 지지직" 그 이상의 말이 필요한가 싶지만(사실 그냥 그렇게 쓰고 끝내고 싶었다),
예의상 한번 정의를 가져와보았다.
 
노이즈 음악은 음악적인 맥락에서 노이즈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 장르이다.
이러한 음악은 보편적인 음악의 관행으로 구분되는 '음악적인 소리'와 '비음악적인 소리'의 경계에 도전하는 장르이다.
노이즈 음악은 노이즈를 주요하게 다루는 넓은 음악적 스타일과 창작 방식들을 포함한다.
 
당연히, 노이즈 음악은 전자 음악에만 있는 개념이 아니다.
여러분들의 귀에 죄송하지만, 관심이 있다면 아래 앨범을 들어보시라.

不失者 - 悲愴 [Fushitsusha - Hisou/Pathétique/4]

이걸 누가 듣냐고 하겠지만, 일단 이 글을 쓰는 본인이 들었으니 한 명은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다양성이 존중받는 오늘날이기에 존재 가능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거는 정말 다를걸.
전자 음악에서의 노이즈 음악이다.

Eric Peters - Electrofear (1972)

여러분의 스피커가 고장 났거나 헤드폰의 접촉 단자가 느슨해진 게 아니다.
그냥 원래 저런 음악(이라고 해도 되나? 일단 음악이라니까 그렇다 하자)이다.
 
그래도, 음악의 정의에 들기 위해 나름 노력한 결과물들도 적지는 않다.

Kabutogani - CXEMA (2009)

추가적인 예시는 올릴 필요를 못 느끼겠다.
얼마나 시끄럽냐의 차이지, 솔직히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일렉트로닉) 노이즈 뮤직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반 세기정도 지난 후에,
의도한 바인지 아닌지 대충 비슷한 소리가 하나의 장르가 되긴 했다.

Hylna - Stop it~

사실 두 장르(?)는 뒤에 (?)이라는 표현이 붙는다는 점과
귀를 통해서 전달된 자극을 뇌가 '소음'이라고 인식한다는 점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노이즈 음악은 구성 요소 자체가 '노이즈'인 거고,
위의 '하이퍼톤(Hypertone)'은 나중에 다루겠지만 '하드코어'를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빠르게 재생한 결과
사실상 노이즈와 구분할 수 없게 된 장르(?)이니까.
(보통 드럼이 1,000 BPM 이상의 속도로 재생되면 우리 뇌는 그걸 드럼이라고 인식하는 걸 포기한다)
 
다른 길로 샜지만, 여하튼.
노이즈 음악을 포함한 실험 음악들이 예술적인 표현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재생목록에 저장해 놓고 듣기에 좋은 장르(?)가 아님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장르를 표현하기 위해서,
본인이 글을 쓸 때 상당 부분 참고한 Ishkur's Guide to Electronic Music의 일부를 인용하겠다.
 
Dissident sounds can sometimes be good.
 Where would Jimi Hendrix or Trent Reznor be without their distortion pedals and overdriven fuzz boxes?
 But Noise isn't interested in making a bad sound sound good when it sounds bad. 
It loves bad sounds that sound bad because bad sounds sound bad.
 If bad sounds sound good then bad sounds wouldn't sound like bad sounds that sound bad, would they?
 Think about it.
 
주류를 거스르는 소리도 가끔 좋을 수는 있다.
과연 지미 헨드릭스나 트렌트 레즈너같은 사람들이 디스토션 페달이나 오버드라이브 퍼즈 박스 없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노이즈는 그 나쁜 소리를 좋게 들리게끔 하려는 노력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이 장르는 나쁜 소리가 나쁘게 들릴수록 좋으므로, 그냥 그렇게 나쁘게 들리는 걸 좋아했다.
만약 나쁜 소리가 좋게 들린다면 나쁜 소리는 나쁜 소리처럼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는 거잖아?
생각해 보라.
 


같이 읽어볼 만한 자료)
[번역] Ishkur의 EDM 가이드 - Experimental (실험 음악)
[번역] Ishkur의 EDM 가이드 - Collage (콜라주)
[번역] Ishkur의 EDM 가이드 - Noise (노이즈)
[번역]Ishkur의 EDM 가이드 - Musique Concrete (구체 음악, 구상 음악)
 
 
> 테레민, 실험 음악, 샘플링, 구상 음악, 콜라주, 플런더포닉스, 노이즈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