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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음악의 세계/[번역] Ishkur's Guide to EDM

[번역] Ishkur의 EDM 가이드 - Hi NRG (하이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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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music.ishkur.com/#

 

- 본 글에서의 '필자'는 원글 작성자를 의미함

- 원활한 전달을 위해, 일부 불필요한 내용 제거 및 의역 포함되었음 (번역체 -> 자연스러움 목적)


Also

 Hi-NRG, HINRG, Electro Boogie

Scene / Period

 Eurodisco / 1970년대 후반


 하이 에너지(Hi NRG, 혹은 하이-에너지/Hi-NRG, 혹은 하이에너지/HINRG, 혹은 안녕 에너지/Hello NRG)는 디스코에서 파생된 장르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한계가 독창적인 음악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졌던 극히 드문 시기에 존재했다.

 

 신디사이저들은 디스코와 펑크 음악에서 잠시 사용되었으나, 대부분 디스코 클리셰(베이스 라인, 호른 팡파레, 감성적인 스트링스 등)와 함께하는 리듬이나 배경음 정도로만 사용되었다. 일렉트로닉의 영향을 받은 디스코는 이전에도 꽤 많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일렉트로닉으로 가득찼던 디스코 음악은, 천재적인 댄스 음악의 대부인 Giorgio Moroder가 만들어 대히트를 쳤던 Donna Summer - I Feel Love(1977년)였다. 

 

 여기서 일렉트로닉으로 가득 찼다는 말은 퍼커션, 베이스라인, 패드까지 모두 해당된다는 뜻이며, 이들 모두 무그 모듈러로 만들어졌다(하지만 킥드럼은 그럴듯 하게 만들 수 없어서 실제 드러머를 고용했었다). 베이스라인은 전형적인 오프 비트의 베이스 스탭이었다. 하지만 무그는 모노포닉(Monophonic, 단음악기)이었기에 코드를 연주하지는 못했다. Moroder는 이 문제를 아르페지에이션(Arpeggiation, ARP)으로 극복했다. 전자 음악에서 가장 중독성 있는 사운드(질주하는 베이스 라인)가 사운드 디자인의 한계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당시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는 시간이 지날 수록 본래의 키(Key, 음정)에서 벗어나려하는 문제점으로 악명높았다. 당시에는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연주하는 시퀀싱 기능이 없었기에, Moroder는 곡의 시그니처 베이스 라인을 8마디 단위로 녹음했어야 했고, 이후 수백만의 곡들이 정말정말 지루한 이 기법에 의존하게 된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오늘날에는 여러분이 사용하는 DAW로 몇 초만에 가능한 기능이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모두가 Moroder의 스타일을 차용하기 시작했고, 불과 일 년도 안되어 디스코 씬은 기초적인 구성에 Moroder 베이스 라인이 깔린 음악들로 넘쳐나게 된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곡들을 디스코라고 부르거나, 스트링스/호른이 가미된 상업적인 디스코와 구별하는 의미에서 "일렉트로 부기(Electro Boogie)"라고 불렀다. Hi NRG라는 이름은 Donna Summer가 "왜 당신의 곡이 그렇게 유명해졌을까요?"라는 질문에 "High Energy Vibe가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Hi NRG는 80년대 내내 게이 클럽의 확실한 문화로 남아 있었으며, 디바, 걸레, 드래그 퀸, 의상도착증(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환자, 윗입 아랫입 모두로 약을 빠는 인간들을 위한 장르였다. 일반적인 디스코가 마돈나, 셰어 등의 여성 팝 스타를 배출하는 방향으로 굳어지는 동안, Hi NRG는 계속해서 가성으로 노래하는 남자들을 위한 장르로 남아있었다. 이 장르는 언더그라운드의 게이들을 위한 장르였고, 보통 그들은 주류 장르가 자신들과 닮아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5~10년정도 앞선 트렌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디스코는 1980년대에 크게 휘청거렸으나, Hi NRG는 DivineLarry LevanSylvester, 그리고 Patrick Cowley와 같은 불멸의 아이콘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 음악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진짜 에이즈가 문제다).

 물론 모든 Hi NRG 아티스트들이 뒤져나갔다는것은 아니다. 스튜디오에 서식하면서 곡을 찍어내고, 수많은 별명과 완벽한 직업 윤리의식을 가졌으며,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데 주저하지 않는 Bobby Orlando가 그들의 유지를 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Stock, Aitken & Waterman도 있다. 빌어먹을 이 양반들은 팝 음악이 포화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Hi NRG를 대중에게 소개해버렸다 -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동일한 비트로 히트곡을 100개 넘게 찍어내기도 하였다.

 

 Hi NRG는 신디사이저가 엄청 많은 일을 했던 시대의 유물이다.

 이 장르가 자신의 한계를 보완하는 더 우수한 신디사이저가 나타난 시점을 훨씬 넘어서도 꽤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1980년대를 넘길 운명은 아니었다.

 

 Hi NRG는 이탈로 디스코(Italo Disco), 신스팝(Synthpop)을 비롯하여 80년대의 수 많은 히트곡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유산은 장르 특유의 베이스 라인을 이어나간 후속 장르들(유로댄스, EBM, 그리고 당연히 트랜스도 포함된다)로 이어졌다.

 


장르의 계보)

 Disco - Hi NRG

 

 

+ 대충 옛날에 썼던 안녕 에너지와 관련된 글 :

 https://coldhearted-sirius-alpha-22.tistory.com/24

 중간의 게이 컬쳐니 아르페지에이션이니 머 이것저것 관련해서 과거의 본인이 써놨다.

 지금 보니까 그냥 이 글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 같기도 한데. 흠.

 

 여담으로 위에 등장하는 Larry Levan개러지의 그 래리 레반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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